작업자 없어도 ‘척척’…과수원 길 익혀 스스로 약제 살포

9면_경로학습 기반 무인 고성능 방제기전북 장수군농업기술센터 사과 시험재배지에서 ‘경로 학습 기반 무인 고성능 방제기’가 작업자 없이 과수 사이를 자동주행하며 약액을 살포하고 있다.“와, 신기하게 진짜 자기가 알아서 가네.”

8월28일 오전 11시 전북 장수군농업기술센터 사과 시험재배지. 사람이 올라타지 않은 방제기가 굉음을 내며 약액을 살포하자 농민들 사이에서 감탄이 나왔다. 시속 2㎞로 달리던 장비는 과수원 끝에서 스스로 속도를 낮춰 방향을 틀었고, 양쪽 노즐에서는 분무액이 안개처럼 뿜어져 나왔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과 장수군농기센터는 이날 ‘경로 학습 기반 무인 고성능 방제기(스피드스프레이어·SS기)’ 현장 연시회를 열었다. 이 기계는 농진청이 아세아텍·한국농수산대학교와 공동 개발한 것으로, 과수 방제 노동력을 줄이고 작업자 안전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김병갑 농진청 농과원 밭농업기계과장은 “기존 자주식 SS기는 운전자가 약액을 흡입할 우려가 있고 경사지에서 넘어지면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무인화를 통해 이같은 위험을 줄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농진청에 따르면 공개된 방제기는 처음 한차례 경로를 등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농민이 리모컨으로 과수원 길을 사전에 입력하면 장비가 이를 기억하고 이후부터는 등록된 경로를 따라 주행하며 약액을 살포한다.

최대로 등록 가능한 재배지 경로는 8곳이다. 기계는 등록 경로를 위성항법장치(GPS)를 활용해 오차 3㎝ 이내로 따라가고, 기체 앞쪽에 충격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멈춘다.

황종일 아세아텍 스마트농업사업팀 부장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보여주며 “장비의 이동 경로와 작업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체 크기는 길이 3m, 너비 1.2m, 높이(방제부 제외) 1.3m 이내로 1t 트럭에 실을 수 있는 정도다. 전동식 주행부와 엔진식 분무·송풍부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방제 중에도 배터리를 충전한다. 완전 전동식 SS기 대비 작업시간이 60% 길다는 게 농진청 설명이다.

약액 탱크 용량은 600ℓ다. 황 부장은 “실제 작업 때는 경사지에서 약액이 쏠리거나 거품이 일어도 넘치지 않도록 500∼530ℓ를 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어 “노즐 설정과 살포량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약액 탱크 한통으로 990∼1650㎡(300∼500평)를 12∼15분 만에 방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제언과 궁금증을 쏟아냈다. 1만1570㎡(3500평) 규모로 사과농사를 짓는 김길구씨(69)는 “앞바퀴가 작아 질척이는 밭에서는 빠질 수 있겠다”며 “사륜구동으로 만들거나 바퀴를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선회할 때 바깥쪽 노즐에서도 분무액이 나왔는데, 과수원 밖으로 약제가 나가면 낭비일 뿐 아니라 이웃 농경지에도 피해를 줄 수 있어 필요한 방향의 노즐만 작동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과장은 “농진청은 올해 안으로 개발을 마치고 2027년부터 신기술 시범사업을 통해 전국 농가 10곳 안팎에 보급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중”이라면서 “현장 의견을 반영해 과수농가의 노동력 절감과 작업자 안전 확보에 도움이 되도록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장수=정채원 기자